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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짜리 훈민정음 NFT 화제…간송미술관은 왜 국보로 NFT 사업을 할까?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22.06.20 09:01:21
  • 최종수정 : 2022.06.20 10:49:32
최근 제주도에서는 한국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관리기관 협의회 실무자 연대회의가 열렸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세계기록유산으로 훈민정음(1997, 해례본) 등 총 16개를 보유, 세계 4위 면모를 갖췄다. 이를 어떻게 잘 보전하고 발전시켜나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한 간송미술관이 지난해 8월 15일 내놓은 개당 1억원 짜리 훈민정음 해례본 한정판 대체불가토큰(NFT) [출처 간송미술관]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한 간송미술관이 지난해 8월 15일 내놓은 개당 1억원 짜리 훈민정음 해례본 한정판 대체불가토큰(NFT) [출처 간송미술관]

여기서 눈에 띈 사업모델을 제시한 곳이 간송미술관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한 간송미술관은 지난해 8월 15일 훈민정음 해례본 한정판 대체불가토큰(NFT, Non-fungible Token)을 발행해 화제가 됐다. 100개 한정으로 발행한 세계 최초의 문화재 기반 NFT다. 가격도 1억원을 책정, 문화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간송미술관은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의 화첩 ‘혜원전신첩(국보)’을 NFT 시리즈물로 제작, 1차로 355개를 제작, 약 16만원대(0.08이더리움)에 판매해 완판 시켰다. 루브르박물관을 갔다가 모나리자 그림이 새겨진 각종 상품을 구매하듯 이제 NFT로 편리하게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간송미술관 제공)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간송미술관 제공)

다만 ‘국보로 돈벌이하려 한다’ 등 비판의 시각이 존재한다. 그래서 최근 연대회의에서 발제에 나섰던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을 직접 만나 NFT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 참고로 간송미술관은 전통 미술 수집가인 전형필 선생이 세운 한국 최초의 민간 박물관으로 국보 12점, 보물 32점을 포함한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전인건 관장은 간송 선생의 장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간송미술관은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1758∼1814?)의 화첩 ‘혜원전신첩’(국보)을 NFT 시리즈물로 제작, 1차로 355개를 제작, 약 16만원대(0.08이더리움)에 판매해 완판시켰다. (간송미술관 제공)

간송미술관은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1758∼1814?)의 화첩 ‘혜원전신첩’(국보)을 NFT 시리즈물로 제작, 1차로 355개를 제작, 약 16만원대(0.08이더리움)에 판매해 완판시켰다. (간송미술관 제공)

Q . 간송미술관이 왜 NFT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하다.

A . NFT 발행은 사업적 관점에 앞서 문화재 보존과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본다. 최선을 다해 관리를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재 상태가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NFT 발행은 4억만 화소 초정밀 촬영 등 당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문화유산을 최상의 상태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또한 보다 많은 이들이 가장 원본에 가까운 문화재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전 세계 대부분의 사립미술관, 박물관들과 마찬가지로 간송미술관의 가장 큰 고민도 미래 지속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간송미술관이 길게는 80여년 짧게는 반세기가 넘게 꾸준히 해왔던 연구, 보존, 교육, 그리고 전시의 기능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간송미술관 그리고 우리 미술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향유할 젊은 세대 유입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안정적인 재원 역시 절실하다. 간송미술관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이 전 세계적인 젊은 우리 미술 팬덤 커뮤니티의 조성이라고 봤다. 블록체인 기술과 메타버스는 이러한 팬 커뮤니티를 만들고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데 유용한 기술기반이 된다고 생각했다.

Q. 어떤 경로로 NFT를 접하고 사업화하겠다고 마음먹게 됐나?

A. 개인적으로 IT를 포함한 기술 발전과 패러다임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블록체인 기술과 NFT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던 와중 지난해 초 디지털미디어 아트에 깊은 조예와 경험이 있는 지인과의 만남에서 ‘지금이 NFT 분야 활동을 시작할 시기’라는 조언을 들었다. 더 자세히 시장조사를 해본 결과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흐름에 동참을 결심하게 됐다. 실제로 2021년이 NFT가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원년 같은 해였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Q. 간송미술관 자체 기술력이 있다고 보기는 힘든데 어떤 파트너 회사와 협력하나?

A. 간송미술관에 블록체인 사업을 직접 할 기술적 역량이 있지는 않다. 처음부터 기술과 기획 등을 함께 할 파트너들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인 훈민정음 NFT는 퍼블리시, 그리고 지금 막 진행하기 시작한 혜원전신첩 NFT 프로젝트의 기술 파트너는 아톰릭스랩과 함께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법률자문 등을 맡은 법무법인 이제, 미디어 콘텐츠 파트너인 ‘BYM A.S.K.’도 함께 하고 있다.

Q. 실제 성과는 어땠나? NFT 사업을 하면서 보람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A. 처음에는 워낙 새로운 영역의 시도와 실험이라는 면에서 여러 문화계 인사, 언론의 우려와 오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부분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극적인 동참이 지속되는 팬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처음 목적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젊은 세대로부터 이해와 참여를 얻어가고 있고, 아름답고 빼어난 우리 문화재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간다는 점에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Q. 훈민정음 해례본 얘기를 해보자. 원본 가치가 높다는 건 다들 안다. 그런데 NFT 가치마저 1억원짜리로 책정한 걸 두고 이견도 많다.

A. 간송께서 해례본을 구입했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민족의 창의력과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다. 간송미술관을 대표하는 유물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보 제70호이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성을 고려해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철학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투기나 사행성을 배제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00개 한정 발행과 개당 1억원이라는 구조 자체가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어려운 장벽이 된다. 동시에 지금까지 간송이 해왔던 일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있는 이들, 그리고 앞으로 간송후원회 안에서 리더십을 가질 이들을 모시는 데 중점을 뒀다. 말하자면, 훈민정음 해례본 NFT는 블록체인화 된 간송미술관 후원회 회원권이라 말할 수 있다.

Q. 회원권이라…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있나?

A. 실제로 해례본 NFT를 구입한 사람은 자동으로 간송후원회에 가입되며, 가장 높은 등급의 후원회원 혜택을 모두 받게 된다. 또한 훈민정음 NFT 클래스 회원의 상징으로 간송미술관에서 특별히 숫자를 맞춰 100권을 한정 제작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교예본과 케이스가 제공된다. 훈민정음 NFT뿐 아니라 지금 진행하는 혜원전신첩 NFT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앞으로 간송미술관 보화각과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간송에서 발행한 NFT 홀더(소유자)를 위한 우리 문화에 대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 등 특별한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Q. ‘혜원전신첩’은 그 속에서도 다양한 NFT를 선보이고 있다. 해례본과 달리 16만원대로 가격을 책정했고 숫자도 늘렸다. 종전과 다른 전략을 취한 이유는 뭔가?

A.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은 간송메타버스뮤지엄(Kansong Metaverse Museum, 이하 KMM)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례본 NFT와 기획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가격 정책도 매우 다르다. 혜원전신첩 NFT의 경우 30점 그림에 등장인물이 160여명에 이른다. 다양한 형태로 다수의 NFT 발행이 가능한 형태로 기획됐다. 4억 화소 급의 고화소 촬영을 했으므로 일반인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기존에 보지 못했던 혜원 작품의 정교한 수준과 천재적인 붓 터치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 예술적 가치와 혜원이라는 작가의 재발견 자체가 충분히 NFT의 구매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KMM 미래에 대한 기대와 문화재 보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구매 동기다.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판매할 때는 NFT 숫자를 더 늘리고 기존 블록체인에 친숙한 투자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도 쉽게 안심하고 접근할 수 있게 크립토 지갑 보급 등 여러 파트너사와 준비하고 있다.

Q. 혜원전신첩 NFT 발행 후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면?

A. 프리세일 기간 직전에 테라, 루나 사태가 발생했다. 국내 NFT 구매 열기가 급랭한 상태에서 프리세일이 진행됐고 당연히 기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한 10일보다 짧은 3일 만에 판매가 완료됐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았고 시장 상황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거둔 성과다. KMM 프로젝트와 혜원전신첩 NFT에 관심을 가지고 한두 개씩 구매한 서포터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NFT 보유자 지갑이 약 80개 정도이며 이 중 60% 정도가 1개 혹은 2개의 NFT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KMM의 1대 서포터즈이며 프리세일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Q.. 국내 플랫폼도 있는데 굳이 글로벌 NFT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등 해외로 문호를 넓히려는 이유는 뭔가?

A. 간송이 가진 문화 자산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많은 커뮤니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송께서 평생 실천해 오신 ‘문화보국’ 정신의 21세기 해석이며,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시각적 공간적 확장이자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현대적 시도’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범용적인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국내 플랫폼들의 경우 사업자별로 별도의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어서 특정 사업자에게 종속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KMM의 확장 가능성을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상당히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까운 미래에 블록체인 네트워크 간에 안정적인 자산 이동이 가능한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국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

Q.. 실제 판매된 금액은 어떻게 쓰이고 있나?

A. 훈민정음 NFT의 판매 수익은 모두 간송미술문화재단 후원회에 기부돼 신축수장고 공사비용, 문화재 보존 작업, 전시 등 간송미술문화재단 운영비로 사용되고 있다.

혜원전신첩 NFT의 프리세일에서 얻어진 재원은 모두 프로젝트팀이 선집행한 동영상 제작비, 오프라인 행사 비용 등으로 사용됐다. 앞으로 NFT 판매를 통해서 확보되는 수익금의 50% 이상은 간송메타버스뮤지엄 사업을 위한 재원으로 적립되고 나머지는 프로젝트 진행 비용 등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보다 널리 알려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글로벌 후원자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시각적, 예술적 매력을 가진 콘텐츠인 혜원전신첩 NFT 프로젝트 진행에 집중할 것이다. 더불어 ‘더샌드박스(TheSandbox)’ 메타버스를 필두로 한 KMM 프로젝트의 협업을 함께 하려고 한다. 혜원전신첩 프로젝트는 앞으로 많은 국내외 작가들과 콘텐츠 제작자들을 연결해 2차, 3차 저작물들을 계속해서 소개할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원숭이 그림’의 작가이자 래퍼인 지비지 작가, 동글인(Circleman) 캐릭터 시리즈로 유명한 양대원 작가가 KMM 프로젝트 참여를 확정했고, 더샌드박스 메타버스의 주요 파트너사인 ‘Fac Bros’와의 협업도 이미 진행 중이다. 이렇게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있으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차기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공개하고 진행해나갈 것이다. 궁극적으로 KMM은 ‘Web 3.0’시대를 지향하는 문화플랫폼으로서 이러한 팬 커뮤니티가 즐겁게 콘텐츠를 향유하고 또 창작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파트너사들과 함께 노력하겠다.

[박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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